유언장을 쓴 뒤 그 유언에 적은 부동산을 팔았다고 해서 유언이 곧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2026년 6월, 유언자가 부동산을 팔았더라도 그 매매대금에까지 유언을 적용하려는 의사가 엿보인다면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6. 6. 24. 선고 2024다260146 판결). 결국 핵심은 ‘판 행위’ 자체가 아니라 ‘판 사람의 진짜 의사’입니다.
부모님이 남긴 자필 유언장에 “이 땅은 자녀들이 이 비율로 나눠 가져라”라고 적혀 있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 땅을 팔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언대로 매매대금을 나눠야 할까요, 아니면 유언은 사라지고 법정상속분대로 나눠야 할까요? 실제로 이 문제를 두고 형제들이 소송까지 간 사건에서 대법원이 내린 판단을 살펴봅니다.
어떤 사건이었나요?
판결문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점 | 있었던 일 |
|---|---|
| 2016. 11. 23. | 아버지가 자신의 부동산을 자녀 4명에게 1.75/5, 0.95/5, 1.75/5, 0.55/5 비율로 나눈다는 자필 유언증서 작성 |
| 2017. 8. 18. | 부동산이 지역주택조합 사업부지에 포함되어, 조합의 토지용역대행사와 매매계약(대금 8억 7,360만 원) 체결 — 그러나 상대방 사정으로 이행되지 않음 |
| 2017. 9. 26. | 지역주택조합 설립인가 |
| 2019. 3. 28. | 조합과 매매대금 8억 원으로 다시 매매계약서 작성(아버지는 췌장암 투병 중, 계약금 8,000만 원 입금) |
| 2019. 4. 16. | 아버지 사망(매매계약 19일 후) |
| 2020. 5.~8. | 자녀들이 상속을 원인으로 1/4 지분씩 등기한 뒤 조합에 각자 매도, 각 1억 7,700만 원씩 수령 |
유언대로라면 자녀들의 몫은 서로 달라야 했지만, 실제로는 법정상속분인 1/4씩 나눠 받은 셈입니다. 유언에서 더 많은 몫을 받기로 되어 있던 자녀가 유언의 효력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부동산을 팔면 유언은 철회된 걸까?
민법은 유언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게 하면서, 유언 뒤에 한 행동이 유언과 맞지 않으면 철회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제1108조(유언의 철회) ①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
②유언자는 그 유언을 철회할 권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제1109조(유언의 저촉) 전후의 유언이 저촉되거나 유언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그 저촉된 부분의 전유언은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본다.
원심(부산고등법원)은 아버지가 유언의 목적물인 부동산을 판 것은 유언과 ‘저촉되는 생전행위’이므로 유언이 철회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부동산이 사라졌으니 그 부동산에 관한 유언도 함께 사라졌다는 논리입니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나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습니다. 먼저 ‘저촉’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촉이란 전 유언을 실효시키지 않고서는 뒤의 생전행위가 유효로 될 수 없는 경우를 말하고, 뒤의 행위가 전 유언과 양립할 수 없는 취지로 행해졌음이 명백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대법원 1998. 6. 12. 선고 97다38510 판결 참조). 그러면서 유언자가 목적물을 처분했더라도 그 처분대금 같은 ‘대상재산’에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할 의사가 추단된다면, 처분했다는 사정만으로 쉽게 철회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주목한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유언의 핵심은 ‘부동산 자체’를 누구에게 줄지가 아니라 자녀들 사이의 몫을 법정상속분(각 1/4)과 다르게 정하는 데 있었습니다.
- 매매대금은 부동산이 형태만 바뀐 ‘대상재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유언 당시 이미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아버지는 자녀들이 부동산 대신 매매대금을 상속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매도청구 제도상 팔지 않아도 강제로 넘어갈 수 있었던 사정도 고려).
- 아버지는 매매계약 당시 말기 암으로 입원 중이었고 19일 뒤 사망했으며, 매매대금을 생활비·병원비로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려 한 사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부동산은 유언 비율대로 주되 팔게 되면 다시 1/4씩 나누려 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법률전문가가 아닌 유언자에게 매매대금에 관한 유언을 따로 하라고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대법원은, 부동산 매도는 유언과 양립할 수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매도를 전제로 대금을 법정상속분과 다르게 나누려던 의사를 보여 준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이 상속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이 판결로 “유언 후 그 재산을 팔면 무조건 유언은 끝”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팔아도 언제나 대금에 유언이 미친다”는 뜻도 아닙니다. 법원은 사건마다 유언자의 의사를 살핍니다. 상황별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유언 후 생긴 일 | 철회로 볼 가능성 | 살펴볼 사정 |
|---|---|---|
| 유언 목적물을 팔고 그 돈을 생활비·병원비로 다 씀 | 클 수 있음 | 대금을 유언과 다르게 처분하려는 의사 |
| 유언 목적물을 다른 사람에게 증여 | 클 수 있음 | 유언과 양립할 수 없는 처분인지 |
| 수용·재개발 등으로 사실상 팔 수밖에 없었고 대금이 그대로 남아 있음 |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음 | 대금에도 유언을 적용하려던 의사 |
| 같은 재산에 대해 다른 내용의 새 유언을 함 | 저촉되는 범위에서 철회 | 두 유언의 내용과 작성 순서 |
같은 ‘매도’라도 왜, 어떤 상황에서 팔았는지, 판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사건도 파기환송된 것이므로 환송 후 법원이 구체적인 사실을 다시 따져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유언을 남기는 분이라면 무엇을 챙겨야 할까요?
- 유언 대상 재산을 팔거나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 유언장에 “이 재산을 처분한 경우 그 대금도 같은 비율로 나눈다”처럼 대상재산에 대한 뜻을 함께 적어 두는 것이 분쟁을 줄입니다.
- 재산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면 새 유언으로 정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유언이 여러 개면 저촉되는 부분은 뒤의 유언이 우선합니다(Q101. 유언장을 여러 개 남긴 경우 어떤 것이 유효한가요? 참고).
- 자필증서 유언은 방식 요건을 하나라도 빠뜨리면 무효가 될 수 있으므로, 작성 방법은 유언 총정리 (1편) — 자필유언부터 유류분반환청구까지에서 꼭 확인하세요.
반대로 상속인 입장이라면, 유언 목적물이 팔렸다는 이유만으로 유언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매 경위, 대금의 사용처, 유언 당시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계좌 내역, 계약서, 진료 기록 등)를 모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상속재산 분할이나 유언 효력에 관한 소송으로 가게 되는데, 그 절차는 유산분할 총정리 (1편) — 분할협의부터 기여분·특별수익까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유언장에 적힌 집을 부모님이 생전에 팔았습니다. 유언은 무효인가요?
‘무효’라기보다 ‘철회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판 돈을 다른 용도로 쓰는 등 유언과 양립할 수 없는 의사가 분명하면 철회로 볼 수 있지만, 대금에도 유언을 적용하려 한 의사가 엿보이면 철회로 쉽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취지입니다.
Q2. 판결에서 말하는 ‘대상재산’이 무엇인가요?
원래 재산이 형태만 바뀌어 남은 것을 말합니다. 부동산을 팔고 받은 매매대금, 매매대금 채권 등이 대표적입니다.
Q3. 유언을 철회하려면 꼭 새 유언을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민법 제1108조 제1항에 따라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 철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철회 여부를 둘러싼 다툼을 피하려면 새 유언으로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4. 이 판결로 이 사건 자녀들의 몫이 확정되었나요?
아닙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돌려보냈습니다. 최종 결론은 환송 후 재판에서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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