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빌려준 돈, 친구 배우자에게 받을 수 있을까?

1컷: 1년 전 카페에서 태호가 가게 차릴 돈 3천만 원을 빌려 달라고 하고, 지현이 차용증을 앞에 두고 웃으며 승낙하는 장면
2컷: 1년 후 지현이 읽지 않은 메시지가 표시된 휴대폰을 보며 난처해하는 장면
3컷: 화가 난 지현이 태호의 아내에게 대신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
4컷: 변호사가 '부부라도 빚은 각자'라고 적힌 화이트보드 옆에서 원칙을 설명하고 지현이 놀라는 장면
5컷: 변호사가 화이트보드로 일상가사 채무(민법 제832조)의 예외를 설명하는 장면
6컷: 지현이 차용증을 들고 태호 본인에게 청구하겠다고 하고, 변호사가 아내가 보증을 선 경우를 덧붙이는 장면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친구가 갚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의 배우자에게 대신 갚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부부라도 각자의 재산과 빚은 따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돈이 생활비처럼 ‘일상의 가사’를 위해 빌린 것이거나, 배우자가 보증을 서거나 함께 빌린 경우라면 배우자에게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부부니까 빚도 같이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부부의 재산을 각자의 것으로 보는 ‘부부별산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제830조(특유재산과 귀속불명재산) ①부부의 일방이 혼인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

②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한다.

재산이 각자의 것이듯, 한쪽이 자기 이름으로 진 빚도 원칙적으로 그 사람의 빚입니다. 만화 속 태호가 가게를 차리겠다며 빌린 3천만 원은 태호의 채무이고, 아내가 그 계약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아내에게 갚으라고 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배우자가 책임지는 ‘일상가사 채무’는 무엇인가요?

예외가 바로 일상가사 채무입니다. 민법은 부부가 일상의 가사에 관해서는 서로 대리권이 있다고 정하고, 그로 인한 빚은 함께 책임지게 합니다.

제827조(부부간의 가사대리권) ①부부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서로 대리권이 있다.

②전항의 대리권에 가한 제한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제832조(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삼자와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다른 일방은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미 제삼자에 대하여 다른 일방의 책임없음을 명시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대법원은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를 “부부의 공동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통상의 사무에 관한 법률행위”라고 보고, 그 부부의 사회적 지위·직업·재산·수입 능력 같은 생활 상태와 지역 사회의 관습, 그리고 그 행위의 객관적인 종류와 성질을 함께 고려해 판단합니다(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31229 판결). 돈을 빌린 경우에도 금액, 빌린 목적, 실제 쓰인 곳 등을 따져 부부 공동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면 일상가사에 속한다고 봅니다(대법원 1999. 3. 9. 선고 98다46877 판결).

어떤 돈이면 배우자에게도 받을 수 있나요?

판례에 나온 예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빌린 목적일상가사로 볼 수 있을까근거
교회 건축 헌금, 가게 인수 대금어렵다97다31229
거액의 대출금 이자 지급, 장남의 주택임대차보증금 보조어렵다97다31229
매매대금이 거액인 대규모 주택·아파트 구입어렵다97다31229
가족이 실제 사는 유일한 집의 분양금 납입볼 수 있다98다46877

만화 속 ‘가게 창업 자금’은 판례가 일상가사로 보지 않은 ‘가게 인수 대금’과 성격이 비슷해,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빌려 간 돈이 실제로 가족의 생활비나 주거 마련에 쓰였다는 사정이 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니,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보여 주는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다른 경우는?

  1. 배우자가 보증을 선 경우: 차용증에 배우자가 보증인으로 직접 서명했다면 보증채무를 근거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2. 배우자가 함께 빌린 경우: 차용증에 부부가 공동 차용인으로 서명했다면 배우자도 채무자입니다.
  3. 배우자 명의를 대신 쓴 경우: 남편이 아내 도장으로 아내 명의 보증서를 냈다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대법원은 그런 사정만으로 아내가 대리권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적이 있고, 표현대리(민법 제126조)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66068 판결).

결국 돈을 빌려줄 때 배우자의 책임까지 확보하고 싶다면, 배우자 본인에게 직접 보증인 서명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차용증 작성 요령은 돈 빌려줄 때 계좌이체만 하면 안 됩니다 — 차용증 1장의 중요성에서 정리했습니다.

친구가 연락을 끊었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배우자에게 받기 어렵다면 결국 채무자 본인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내용증명으로 갚으라고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이나 소송으로 집행권원을 받은 뒤 채무자의 재산에 강제집행하는 순서입니다. 연락이 끊긴 채무자에 대한 대응은 연락 끊긴 채무자, 바로 소송하면 될까? 내용증명을 먼저 보내야 하는 이유를 참고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Q1. 친구 아내가 그 돈을 빌릴 때 옆에 있었는데, 아내도 책임이 있나요?

옆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함께 차용인이나 보증인으로 서명했거나, 빌린 돈이 생활비 등 일상가사에 쓰였다는 사정이 있어야 배우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Q2. 친구 부부가 이혼하면 재산분할로 받은 재산에서 받을 수 있나요?

재산분할로 넘어간 재산은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재산이 됩니다. 다만 빚을 피하려고 형식만 이혼하고 재산을 넘긴 경우라면 사해행위 취소 등을 검토할 수 있으므로 상담을 받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Q3. 일상가사 채무라면 배우자에게 얼마까지 청구할 수 있나요?

민법 제832조는 그 채무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게 하므로, 일상가사로 인정되는 채무라면 배우자에게도 그 채무 전부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가사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인정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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