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규칙, 지형, 이용객 편의성 등 제약이 많은 골프코스 설계도면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기능이나 실용성이 앞서는 이른바 ‘기능적 저작물’은 저작권법상 창작성을 인정받기가 유독 까다롭습니다. 스크린골프 시뮬레이션에 실제 골프장을 재현한 영상을 사용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능적 제약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창작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기준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습니다. 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4다228661 판결(공2026상, 816)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경과
원고는 골프장 코스 설계업을 하는 미국 법인으로, 국내외 여러 골프장 소유주와 설계계약을 체결해 골프코스 설계를 마쳤습니다. 피고는 국내외 여러 골프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스크린골프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는 회사로, 골프장 소유주들과 이용협약을 체결한 뒤 그 시스템에 원고가 설계한 골프코스를 재현한 영상을 포함시켰습니다.
원고는 골프코스 설계도면의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는데, 피고가 골프코스를 그대로 재현한 영상을 사용해 스크린골프 시스템을 만듦으로써 복제권·2차적저작물작성권·전송권 등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과 침해행위 정지·침해물 폐기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의 판단 —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
원심(서울고법 2024. 2. 1. 선고 2023나2003078 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클럽하우스·진입도로·연습장 등 시설물과 개별 홀의 배치는 산악 지형이라는 부지 제약과 이용객의 편의성·안전성이라는 기능적 요소에 따른 것이고, 티 그라운드·페어웨이·러프·벙커·워터해저드·그린 등은 다른 골프코스에서도 공통적으로 쓰이는 요소이며, 골프 규칙·규격·국제기준의 제약을 받는 개별 홀의 구성도 난이도·재미·전략이라는 기능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연물 조경 등 자연적 요소도 미적 창작 표현으로 보기 어렵고, 개별 홀들도 골프 홀의 대체적 유형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원심의 판단이었습니다. 요컨대 기능적 제약이 워낙 크기 때문에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였습니다.
쟁점 — ‘창작성’이란 무엇이고, 기능적 저작물도 보호받을 수 있는가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라고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창작성’에 대해,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다49180 판결, 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6다227625 판결 등 참조).
문제는 예술성보다 기능이나 실용적 사상의 표현이 주된 목적인 ‘기능적 저작물’입니다. 이런 저작물은 해당 분야의 일반적인 표현방법, 용도·기능 자체, 이용 편의성 등에 따라 표현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원은 기능적 저작물이 그러한 일반적 표현방법에 따라 기능이나 실용적 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면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이 담겨 창조적 개성이 나타나 있다면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도9601 판결, 대법원 2021. 6. 24. 선고 2017다261981 판결, 대법원 2025. 9. 4. 선고 2023다297400 판결 등 참조). 참고로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5호는 “건축물ㆍ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을 저작물의 한 유형으로 예시하고 있어, 골프코스 설계도면과 같은 기능적 설계물도 애초에 저작권법이 상정하는 보호 대상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기능적 제약이 있어도 창조적 개성은 발휘될 수 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골프코스는 플레이 순서, 기준 타수, 홀의 개수 등이 골프 규칙상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지형·안전성 등의 제약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설계자는 그러한 제한을 고려하면서도 골프코스를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를 다양하게 선택·배치·조합함으로써 다른 골프코스나 개별 홀과 구별되는 창조적 개성을 발휘해 설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용적·기능적 요소로 인해 표현에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창작성이 일률적으로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이 사건 골프코스 설계도면에는 시설물과 개별 홀들의 전체적인 형태·배치, 기본적 구성요소의 위치·모양·개수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이용객들에게 상황별 전략을 세우게 하고 코스 진행에 따른 변화를 느끼게 하며 조경·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등 일정한 설계 의도에 따라 선택·배치되어 유기적 조합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게임저작물의 창작성에 관한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 참조). 원고가 기능적 요소와 구분하여 이러한 구성요소의 선택·배치·조합에 따른 전체적 형상을 창작성 있는 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특정한 이상,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거나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한 창조적 개성을 가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이 부분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채 곧바로 창작성을 부정한 데에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덧붙여진 쟁점 — 업무상저작물과 국제사법상 준거법
이 사건에는 원고가 미국 법인이라는 섭외적 요소도 있었습니다. 피고는 이 사건 설계도면이 업무상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다투었는데, 저작권법 제9조는 “법인등의 명의로 공표되는 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때에는 그 법인등이 된다”라고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업무상저작물의 저작권 최초 귀속에 관한 법률관계에 외국적 요소가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작성의 기초가 된 고용관계 등 업무상 관계에는 법정지의 국제사법에 따라 결정된 준거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파기환송 후 원심에서 이 점도 심리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부분 판시가 인용한 선례로 판결문에는 대법원 2025. 7. 3. 선고 2025다209384, 209391 판결이 언급되어 있으나, 현재 확인 가능한 판례 데이터베이스에서는 별도로 검색되지 않아 사건번호 확인이 필요합니다.)
핵심 법령 한눈에 보기
| 법령 | 조문 | 핵심 내용 |
|---|---|---|
| 저작권법 | 제2조 제1호 | 저작물 = 인간의 사상·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창작성 요구 |
| 저작권법 | 제4조 제1항 제5호 | 건축물·모형·설계도서 등 건축저작물 예시 |
| 저작권법 | 제9조 | 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자는 원칙적으로 법인등 |
| 저작권법 | 제2조 제31호 | 업무상저작물의 정의(법인등의 기획 하에 업무상 작성) |
실무적으로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가
이 판결은 골프코스 설계뿐 아니라 건축 설계, 게임, 소프트웨어 UI, 산업디자인처럼 기능적 제약이 큰 창작물을 다루는 기업들에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먼저, 기능적 제약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저작물성이 자동으로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송에서 창작성을 주장하려면 단순히 “우리 결과물이 남다르다”는 추상적 주장이 아니라, 기능적 요소와 창작적 표현을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배치·조합이 창조적 개성을 이루는지 특정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가 기능적 요소와 구분해 전체적 형상을 창작성 있는 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특정했다는 점이 대법원 판단에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둘째, 타인이 만든 결과물을 상업적으로 재현·이용하려는 기업이라면, 그 대상물의 소유자나 운영자와만 계약을 맺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골프장 소유주와 이용협약을 맺었을 뿐 설계자인 원고로부터는 별도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설물의 외형을 재현하는 사업을 기획할 때는 그 시설을 실제로 설계·창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그 주체의 저작권이 살아있는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외국 법인이 관련된 업무상저작물 분쟁에서는 저작권의 최초 귀속 문제에 국제사법에 따른 준거법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치며
이번 판결은 기능적 저작물이라 하더라도 기능적 제약 속에서 발휘된 선택·배치·조합의 창조적 개성이 있다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골프코스 설계도면이라는 구체적 유형에 적용해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본 정보는 일반적인 법률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 상담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창작성 인정 여부는 결과물의 구체적 내용과 증명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시다면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