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 안에서 상가를 임차해 영업하던 세입자라면 한 번쯤 겪는 상황이 있습니다. 임대차 기간은 끝났는데 보증금은 못 받았고, 그 사이 조합이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면 이제 누구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할까요? 임대차가 이미 끝난 뒤에 소유자가 바뀐 경우라 임대인 지위가 그대로 넘어가는지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이 문제에 명확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대법원 2026. 4. 9. 선고 2023다307116 판결(공2026상, 1109)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경과
원고는 2017년 상가 점포를 임차하면서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 1,000만 원을 지급했고, 이후 임대차기간을 2021. 12. 31.까지로 갱신했습니다. 한편 피고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2018년 관리처분계획 인가·고시를 받았고, 이주기간을 2021. 6. 1.부터 11. 30.까지로 정해 조합원과 세입자들에게 이주안내문을 통지했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아닌 전 임차인을 상대로 점포 인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원고에 대한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아 2022. 4. 6. 점포 인도집행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이 점포에 관하여 신탁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시점은 2022. 1. 19.이었습니다. 즉 2021. 12. 31. 임대차기간이 만료된 후, 원고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피고가 소유권을 취득한 것입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① 임대차보증금 반환, ② 권리금 회수 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③ 영업손실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원심(서울중앙지법 2023. 11. 21. 선고 2023나14222 판결)은 임대차계약이 이미 기간만료로 종료된 뒤에 피고가 소유권을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모두 배척했습니다.
쟁점 1 — 기간이 끝나도 임대차관계가 유지되는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9조 제2항은 “임대차가 종료한 경우에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는 임대차 관계는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취지에 대해,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에도 임차인의 목적물에 대한 점유를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보호함으로써 보증금반환채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44224, 244231 판결, 대법원 2023. 11. 9. 선고 2023다257600 판결 등 참조). 즉 기간만료나 합의해지로 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임대차관계가 곧바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보증금을 받을 때까지는 법률상 계속되는 것으로 ‘의제’됩니다.
쟁점 2 — 소유자가 바뀌면 새 소유자가 임대인 지위를 당연히 승계하는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는 제1항에서 “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건물의 인도와 「부가가치세법」 제8조, 「소득세법」 제168조 또는 「법인세법」 제111조에 따른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면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라고 대항력의 요건을 정하고, 제2항에서 “임차건물의 양수인(그 밖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를 포함한다)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이 대항력을 취득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상가건물의 소유자가 바뀌면 양수인 등 새로운 소유자가 임대인 지위를 당연히 승계한다는 취지라고 밝혔습니다(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다218874 판결,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15다59801 판결 등 참조).
쟁점 3 — 두 법리를 결합하면: 기간만료 후 양도된 경우는?
대법원은 위 두 법리를 결합해 이번 판결의 핵심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대항력 있는 상가임대차에서 기간만료나 합의 등으로 임대차가 종료되었더라도 제9조 제2항에 의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는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의제되므로, 그 상태에서 임차목적물이 양도되면 제3조 제2항에 의해 양수인에게 ‘임대차가 종료된 상태에서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가 당연히 승계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법률상 당연승계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 결과 양수인은 상가건물의 소유권과 결합해 임대인의 임대차계약상 권리·의무 일체를 그대로 승계하며,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합니다. 반대로 종전 소유자(양도인)는 임대차관계에서 탈퇴해 보증금반환채무를 면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대입하면, 원고가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었다면 2021. 12. 31. 임대차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이상 임대차관계는 계속 존속하고, 그 후 2022. 1. 19. 피고가 소유권을 취득함으로써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가 대항력 있는 임차인인지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단지 임대차계약이 기간만료로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임대인 지위 승계를 부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부분에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아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권리금·영업손실 부분은 왜 상고기각되었나
흥미로운 점은, 대법원이 임대인 지위 승계에 관한 원심의 법리 판단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은 결과적으로 원심의 결론(청구 기각)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별도로 있었습니다. 이미 관리처분계획이 인가·고시되고 예정된 이주기간도 지나는 등 재건축사업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었고, 임대차계약에도 이주기간 중 점포를 인도하기로 하는 특약이 있었다는 사정에 비추어, 피고가 원고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법리 자체는 원심이 잘못 설시했지만, 결론에는 영향이 없었던 셈입니다. 영업손실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부분 역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아 그대로 상고기각되었습니다.
핵심 법령 한눈에 보기
| 법령 | 조문 | 핵심 내용 |
|---|---|---|
|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 제3조 제1항 | 건물 인도 + 사업자등록 신청 다음 날부터 대항력 발생 |
|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 제3조 제2항 | 임차건물 양수인은 임대인 지위를 당연승계 |
|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 제9조 제2항 | 보증금 반환 전까지 임대차관계 존속 의제 |
실무적으로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가
이 판결이 상가 임차인과 재건축·재개발 조합 실무에 주는 시사점은 뚜렷합니다.
먼저, 상가 임차인 입장에서는 대항력 요건, 즉 건물의 인도와 사업자등록을 확실히 갖추어 두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대항력이 없다면 소유자가 바뀌어도 새 소유자에게 임대인 지위 승계나 보증금 반환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임대차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임대차관계가 소멸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상 법률상 임대차관계는 계속되고, 그 사이 소유권이 넘어가면 새 소유자가 보증금반환채무를 그대로 떠안습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이나 부동산 매수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 부동산에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고 보증금이 아직 반환되지 않은 상태라면, 계약 종료 여부와 무관하게 소유권을 취득하는 순간 임대인으로서 보증금반환채무를 인수하게 된다는 점을 소유권 취득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권리금 회수 방해 주장은 임대인 지위 승계 여부와는 별개로, 정비사업 진행 경과나 이주기간 관련 특약 등 개별 사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건축·재개발구역 내 상가라면 이주기간·명도 관련 특약의 존재와 내용을 미리 꼼꼼히 검토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판결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9조 제2항의 임대차관계 존속 의제와 제3조 제2항의 임대인 지위 당연승계 법리를 결합하여, 기간만료 후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소유권이 이전된 경우에도 새 소유자가 보증금반환채무를 승계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본 정보는 일반적인 법률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 상담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대항력 취득 여부, 소유권 이전 시점, 권리금 관련 특약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시다면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