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 뇌졸중, 교통사고 후유증, 지적장애 등으로 스스로 법률행위를 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진 경우, 그 사람의 재산과 신상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요? 우리 민법은 이를 위해 ‘성년후견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후견인이 선임되어 그 사람을 대신해 법률행위를 하거나 보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2013년 개정 민법으로 종래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폐지하고 새롭게 도입된 이 제도를 상세히 살펴봅니다.
1. 성년후견제도의 종류
현행 민법은 사무처리 능력의 저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유형의 후견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① 성년후견 (민법 제9조 이하)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위한 제도입니다. 가정법원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내리면 성년후견인이 선임되고, 피성년후견인의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용품 구입 등 일상적 행위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민법 제10조 제4항).
민법 제9조(성년후견 개시의 심판)
① 가정법원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하여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에 의하여 성년후견 개시의 심판을 한다.
② 한정후견 (민법 제12조 이하)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결여까지는 이르지 않은 경우)에 활용합니다. 가정법원이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내리면 한정후견인이 선임되고, 법원이 지정한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처분이나 금융거래만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고 나머지 일상적 행위는 본인이 단독으로 할 수 있습니다.
③ 특정후견 (민법 제14조의2 이하)
일시적으로 또는 특정 사무에 한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합니다. 예컨대 일시적 의식불명 상태에서 특정 계약을 체결하거나 소송행위를 해야 할 때, 법원이 그 사무에 한정하여 특정후견인을 선임하는 방식입니다. 성년후견·한정후견과 달리 피특정후견인은 행위능력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2. 후견 개시 절차
성년후견과 한정후견을 개시하려면 가정법원에 심판 청구를 해야 합니다. 청구권자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입니다.
법원에 제출할 주요 서류는 ① 심판청구서, ② 가족관계증명서, ③ 주민등록등본, ④ 진단서(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의 작성), ⑤ 후견인 후보자에 관한 자료(이해관계인이 추천하는 경우) 등입니다. 법원은 심판에 앞서 반드시 피후견인이 될 사람의 의견을 청취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정신감정을 명할 수 있습니다.
심판이 확정되면 법원은 후견 등기를 촉탁하고, 이후 후견인의 권한은 후견등기부를 통해 공시됩니다. 종래의 금치산·한정치산과 달리 호적(가족관계등록부)에는 표시되지 않으므로 일반 제3자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3. 후견인의 권한과 의무
성년후견인은 법원이 정한 범위 내에서 피후견인을 대리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있고,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 복리를 위해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습니다(민법 제947조).
특히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한 결정(의료행위 동의, 요양시설 입소 등)은 원칙적으로 후견인이 할 수 있으나,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중요 신상 결정도 있습니다(민법 제947조의2). 또한 후견인이 피후견인 소유 부동산 처분, 소송행위, 금전 차용 등 중요 재산행위를 할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민법 제949조의2).
4. 후견감독인 제도
법원은 필요한 경우 후견감독인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 후견감독인은 후견인의 사무를 감독하고 피후견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합니다. 가족이 후견인이 된 경우 재산 횡령 등의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후견감독인을 선임하기도 합니다.
5. 임의후견 —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하는 후견
임의후견은 본인이 정신적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미래를 대비하여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고 후견의 내용을 정하는 계약입니다. 공정증서로 작성한 임의후견계약을 체결해 두면, 나중에 본인의 의사능력이 저하되었을 때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여 계약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이 사람이 내 재산을 이렇게 관리해 달라’는 사전 설계가 가능한 것입니다.
6. 실무적 유의사항
성년후견 개시 심판이 내려지면 법인의 이사 등 일정 직위에서 당연 퇴임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피성년후견인은 의사·변호사·공인중개사 등 각종 면허·자격 취득에 제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덜 제한적인 한정후견이나 특정후견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으므로, 피후견인의 상태와 필요에 맞는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 간 의견이 엇갈려 후견인 선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경우 법원은 피후견인의 복리를 최우선 기준으로 후견인을 선임하며, 필요한 경우 법인(사회복지법인,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을 후견인으로 선임하기도 합니다. 성년후견제도는 한번 개시하면 장기간 지속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7. 후견 개시 시 금융거래 실무
후견인이 선임되면 피후견인 명의 은행계좌 거래, 보험금 수령, 부동산 처분 등 재산 관련 업무를 후견인이 대행합니다. 금융기관은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요구합니다. 이 서류는 대법원 후견등기시스템(www.ssjun.net)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으며, 후견인의 권한 범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후견인이라 하더라도 법원의 허가 없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처분하거나 금전을 대여하는 행위는 무효가 되고, 임무를 위반한 후견인은 손해배상 책임과 형사처벌(업무상 횡령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8. 후견 종료와 심판 취소
피후견인의 상태가 호전되어 스스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을 회복한 경우, 본인·친족·후견인 등이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종료 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조). 법원이 이를 인정하면 후견이 종료되고 등기가 말소됩니다. 반대로 한정후견인이 선임되어 있다가 상태가 악화된 경우에는 성년후견으로 변경하는 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성년후견제도는 당사자의 자율성과 존엄을 최대한 보호하면서도 실질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현대적 보호 시스템입니다. 가족이나 지인 중 판단 능력이 저하된 분이 있다면,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그 분의 재산과 신상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